[펌글] 소방점검, 때 놓치면 백약도 무효
- HIC 강남
- 2016년 11월 28일
- 3분 분량
지난해 국민안전처 민원 처리건수는 총 15,243건에 달한다. 소방관련 제도개선과 법령질의 등 전체 민원의 과반수인 5,028건이 중앙소방본부 소방제도과에 집중되고 있다. 소방시설관리사에 대한 행정처분도 경고가 112건, 행정심판 5건, 행정소송 4건, 자격정지 3건 등 증가 추세에 있다. 소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민원과 처분도 늘고 있는듯하다.
최근에는 소방대상물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에서는 국민행복정책 종합평가를 위한 기본계획을 세우고 특정소방 대상물의 자율안전 관리를 강화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단속과 특별조사를 통해 예방업무의 내실화를 꾀하고 종합평가를 실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소방관서의 특별조사 운영 실적에 따라 점수를 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실적 올리기에 급급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 소방시설관리업체만을 불러들여 자인서를 쓰게 하니 힘없는 그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범법자로 내몰린다. 마냥 정상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이 시기에 소방산업 활성화는커녕 찬물을 쏟아 붇고 있다. 마치 점검업체를 오랏줄로 묶어놓고 칼춤을 추는 형국이다.
건수를 올릴수록 종합평가 심사 점수를 더 준다고 하니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자율안전관리란 무엇인지 진정 되묻고 싶다.
필자는 구차하게 잘못을 피해나가자는 것이 아니다. 소방시설 자체점검은 초창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소방관서는 늘 갑의 위치에 서 있었다. 온갖 행정력을 동원해 업체를 쥐 잡듯 다뤄 왔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잘못한 행위는 처벌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점과 환경을 개선하지 않은 채 마치 신이라도 들린 듯 휘두르는 칼날 탓에 소방에 대한 애증이 교차할 뿐이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법을 만든 사람은 누구인까. 과거 소방서에서 관리하던 대상물은 과연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까. 모르긴 해도 지금보다 감춰진 문제가 더 많았을 것이다.
소방시설공사 분리 때문에 촉발된 소방시설물의 불량상태 조사가 일파만파 커지며 제어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고 특별조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명분을 주고 있다. 그러나 안전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처벌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체점검은 건축물의 소방안전을 확보하고 관리하기 위한 제도다. 고도의 기술과 경험, 시설에 대한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다. 사실 건물주가 스스로 자기책임의 원칙에 따라 업무수행을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지금은 이러한 건물의 직접적인 관계인의 능력 부족으로 소방시설관리업체에게 업무를 맡긴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기본적인 업무지식조차 없는 비전문가가 이런 안전관리 대행을 하는 전문가를 감독하는 일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명확한 범위가 정해져있지 않은 까닭에 대행 불가능한 업무와 건물 내 상주 관리 업무에 대한 책임까지 대행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건물주의 인식도 큰 문제다. 법에서 정한 의무이기에 소방안전관리 비용은 늘 소모성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게다가 화재보혐요율 등 직접적인 인센티브도 없기에 기술력이나 서비스 수준, 능력은 항상 뒷전이고 저렴한 비용만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들의 인식부터 깨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방시설유지관리 위반과 관련한 행정처벌 기준과 과태료 부과 기준을 높이는 등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이윤추구에 급급한 일부 소방시설관리업체들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업무에 투입되는 인원과 시간을 축소하거나 기술력이 부족한 보조자 또는 일용직 근로자를 고용하는 작태는 소방안전관리의 의미와 공공성마저 훼손시키는 일이다.
정부도 무조건 시장경제에 맡길 것이 아니라 적정하고 합리적인 비용 규정을 정립하고 소방안전관리의 품질 향상을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소방시설 작동기능점검 제도도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시행되는 소방시설 작동기능점검은 점검자의 능력이나 특정소방대상물의 규모와 상관없이 자체점검표를 사용해 획일적인 점검을 수행한다. 건물관계인이 혼자 할 수 있는 업무도 관리업체에게 의뢰하면 관리사 1인과 보조인력 2인이 투입되는 모순이 있다.
점검을 의뢰한다 해도 관리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 상황 때문에 관리사 참여 문제로 시시비비가 이어진다. 실제로는 업체에서 점검을 하지만 보고서는 관계인 이름으로 제출하는 편법 점검도 자행된다.
소방시설관리사는 지난해까지 1,281명이 배출됐다. 하지만 관리사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사회적 파장은 이미 1억 이상의 연봉을 줘도 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업체 내에서는 팀장급과 직원간의 급여체계에 혼란을 주고 위계질서가 깨지는 등 논란을 겪는다. 소방시설 관리사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현실을 정상이라고 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극약처방도 때를 놓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인력부족과 기술력 차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시험횟수를 늘리고 적정인력을 배출해야 한다. 합격 발표 시기를 앞당기는 방법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작동기능점검을 관리업체에 의뢰했을 때 규모에 따라 실무능력을 가진 소방기사가 점검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점검업에 종사하는 기사들의 사기진작과 인력 수급 문제가 해소돼 자체점검 제도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건물 관계인들도 체계적인 유지관리 등의 점검방법을 전문업체로부터 습득할 기회를 얻게 돼 자율적인 점검 업무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건물주는 소유권만 가질 뿐 사용권은 시민과 사회에 있다. 소방이 가져야할 최고의 가치는 공공성이다. 소방시설관리사도 건축주에게 봉사만 하면 시녀나 하수인 밖에 되지 않는다.
사회 이익과 건축주의 이익이 반목할 때 관리사는 당연히 굶어 죽을 각오로 소방안전에 대한 공공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소방관리업체에게도 소방안전관리자의 보수요구권을 부여해 건물주에게 시정명령한 사실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 등 개선이 필요하다. 업체 스스로도 윤리경영을 선포하고 표준계약서와 체계화된 매뉴얼을 개발해 신뢰받는 점검 역량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모두가 고용창출에 앞장서지만 소방시설 관리업처럼 수익도 없이 소방서 호출에 마음졸여가며 사업을 영위하는 산업은 아마 없는 것 같다. 오늘도 공정한 법질서 시행의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는지 아는가.
건축주에게 먼저 책임을 물어야 안전이 지켜진다. 이것은 불문가지다. 근본적인 문제는 방치한 채 힘없는 업체만 처벌하고 임시방편의 긴급수혈도 하지 않은 까닭에 이미 허약할 대로 허약해진 관리업체만 중병을 앓고 있다.
누구를 위한 국민 행복 정책인가. 관리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도 행복할 권리가 있는 선량한 국민들이다.
한국소방안전권익협회 탁일천 회장
** 소방방재신문 (http://www.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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